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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 믿다 하다 is unavailable, but you can change that!

“저, 목사님 이런 거 질문해도 되나요?” “쓸데없는 것 물어봐서 죄송해요” 교회 안에서 신앙적 고민과 질문거리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왜일까? 아마도 질문을 했다가는 이것이 곧 “믿음 없음”으로 보일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신앙에 있어 의심은 나쁜 것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냥 믿어”식의 강권과 “일단은 순종해”식의 지시에 너무도 익숙해져 버렸다. 이런 신앙 교육은 성도들이 홀로 고민하게 만들고 결국 신앙에서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신앙의 여정에서 ‘의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 아니 오히려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말하며 신앙에 대해 고민하고 묻는 과정이...

것은 단칸방 혹은 셋방에 세 들어 사는 이를 말하는데 그런 자도 역시 동일하게 공사에 참여합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무엇보다 3장의 표현대로 ‘자기 방과 마주 대한 부분’의 공사에 헌신적으로 동참했습니다. 그렇게 성경은 정말 아무 의미 없어 보이고, 보면 하품만 나오는 이 명단들을 잊지 않고 굳이 명시합니다. 우린 효율성을 쫓는 기계가 아니라 더 선한 게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즉 가치를 좇을 수 있는 영혼을 지닌 하나님 형상입니다. 가위바위보에 져도, 시험에서 좀 미끄러져도, 유재석이 아니어도 그 자체로 존엄하며 하나님께 각자의 달란트에 맞는 역할을 받았습니다. 우리 안에도 이미 빛나는 것이 있습니다. 이처럼 분명한 진리를 외면한 채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 소유욕에 물든 우리의 욕망이, 고지론에 얽매이는 우리의 모순성이 자신을 부패하게 합니다. 고지론을 빙자한 성공주의는 신앙을 파멸로 이끕니다. 폴 트루니에는 「강자와 약자」(IVP)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남깁니다.
Pages 165–166